기원전 2세기는 기원전 200년부터 기원전 101년까지를 말한다.
- 기원전 200년 - 묵특선우, 백등산에서 한 고조의 군대를 포위하고 공물을 약속받음. (백등산 포위전)
- 기원전 195년
- 기원전 194년 - 위만이 고조선의 준왕을 몰아내고 고조선의 왕이 되어 위만조선 성립.
- 기원전 186년 - 로마에 술의 신 바쿠스를 기리는 축제인 바카날리아가 성행하자, 로마 원로원은 이를 금지하는 칙령을 공포함.
- 기원전 180년 - 중국 전한, 여씨의 난 발발, 고황후 여씨 일족 숙청, 대나라 왕 유항이 문제로 옹립됨.
- 기원전 170년 - 그라쿠스 형제의 부친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가 셈프로니아 바실리카를 세움.
- 기원전 167년 - 유다 마카베오가 마카베오의 반란을 일으킴.
- 기원전 164년 - 안티오쿠스 5세, 셀레우코스 제국의 9대 왕으로 즉위.
- 기원전 162년 - 드미트리우스 1세, 셀레우코스 제국의 10대 왕으로 즉위.
- 기원전 157년 - 전한, 유일한 이성 제후국 장사나라를 폐함.
- 기원전 154년 - 전한, 오초칠국의 난 발발.
- 기원전 150년 - 알렉산더 발라스, 셀레우코스 제국의 11대 왕으로 즉위.
- 기원전 149년 - 로마, 제3차 포에니 전쟁 발발.
- 기원전 146년
- 기원전 141년 - 한 무제, 제위에 오름.
- 기원전 140년 - 시몬 마카베오가 하슈모나이의 왕이 됨.
- 기원전 139년 - 전한 무제, 장건을 월지에 파견.
- 기원전 136년 - 전한 무제, 오경박사 설치, 유교를 중국의 국교로 채택함.
- 기원전 133년 - 로마,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 BC 121)
- 기원전 128년 - 위청, 흉노 군대를 대파함.
- 기원전 112년 - 전한에서 주금 사건이 발발하여, 승상 조주 이하 106명의 열후의 작위가 박탈됨.
- 기원전 111년 - 남월국 멸망.
- 기원전 109년
- 전한(前漢)은 섭하(渉何)를 위만조선에 보내 우거왕(右渠王)을 꾸짖고 회유하였으나, 마침내 우거는 조서(詔書)을 받들기를 거부함. 섭하가 물러나 국경에 이르러 패수(浿水)에 닿자 마부(馬夫)를 시켜 섭하를 전송하러 온 자인 조선 비왕(裨王) 장(長)을 찔러 죽였고, 무제는 섭하를 요동 동부도위(遼東 東部都尉)로 삼음. 위만조선은 섭하를 원망하고, 병사를 내어 섭하를 공격하여 죽임.[1]
- 기원전 108년 - 위만조선 멸망. 한사군 중 낙랑군·진번군·임둔군 설치.
- 기원전 107년 - 현도군 설치.
- 기원전 104년
- 기원전 195년 - 중국 전한의 초대 황제 고제 (6월 1일)
- 기원전 194년 - 고대 그리스 수학자 에라토스테네스
- 기원전 188년 - 전한의 2대 황제 혜제 (9월 26일)
- 기원전 187년 - 셀레우코스 제국의 왕, 안티오쿠스 3세 대왕
- 기원전 184년 - 고대 로마의 극작가 티투스 마키우스 플라우투스
- 기원전 183년
- 기원전 180년 - 중국 전한의 태황태후 · 섭정 고황후 (8월 18일)
- 기원전 175년 - 셀레우코스 제국의 왕, 셀레우쿠스 4세
- 기원전 174년 - 흉노의 선우(單于) 모돈 선우
- 기원전 164년 - 셀레우코스 제국의 8대 왕, 안티오쿠스 4세
- 기원전 162년 - 셀레우코스 제국의 9대 왕, 안티오쿠스 5세
- 기원전 157년 - 전한 5대 황제 문제 (7월 6일)
- 기원전 154년 - 로마 공화정의 정치가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 기원전 150년 - 셀레우코스 제국의 10대 왕, 드미트리우스 1세
- 기원전 146년 - 셀레우코스 제국의 11대 왕, 알렉산더 발라스
- 기원전 141년 - 전한의 6대 황제 한 경제
- 기원전 138년 - 셀레우코스 제국의 13대 왕, 안티오쿠스 6세
- 기원전 135년 - 전한의 태황태후이자 전한의 5대 황제 한 문제의 황후, 효문황후
- 기원전 132년 - 로마 공화정의 개혁 정치가이자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 기원전 129년
- 기원전 125년 - 셀레우코스 제국의 12대 및 16대 왕, 드미트리우스 2세.
- 기원전 121년
- 기원전 108년
- ↑ “한나라는 섭하(渉何)를 보내 우거를 꾸짖고 회유하였으나, 마침내 우거는 조서(詔書)을 받들기를 거부하였다. 섭하가 물러나 국경에 이르러 패수(浿水)에 닿자 마부(馬夫)를 시켜 섭하를 전송하러 온 자인 조선 비왕(裨王) 장(長)을 찔러 죽이고 즉시, 강을 건너 말을 달려 요새로 들어가, 드디어 천자에게 귀국 보고를 하기를, ‘조선의 장수(將帥)를 죽였나이다’라 하였다. 천자는 그 명분이 좋다고 여긴 즉, 꾸짖지 아니하였고, 섭하를 요동 동부도위(遼東 東部都尉)로 삼았다. 조선은 섭하를 원망하고, 병사를 내어 섭하를 공격하여 죽였다.” / “元封二年,漢使涉何譙諭右渠,終不肯奉詔。何去至界上,臨浿水,使御刺殺送何者朝鮮裨王長,即渡,馳入塞,遂歸報天子曰「殺朝鮮將」。上為其名美,即不詰,拜何為遼東東部都尉。朝鮮怨何,發兵襲攻殺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