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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방대룡

房大龍

출생1938년 3월 12일
일본제국령 조선 전라북도 정우면 (추정)
(현 대한민국 전라북도 정읍시)
사망1983년 10월 11일(45세)
영등포구 적십자병원
사인뇌출혈
국적대한민국
본관남양
학력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직업기업인
부모아버지 방근석
형제동생 방대남
배우자이일순
자녀

방정혜, 방정화, 방정난, 방정수, 방정미
아들
방정식

슬하 1남 5녀

방대룡(房大龍, 1938년 3월 12일 ~ 1983년 10월 11일)은 전 기업인이자, 기술자이다. 자택에서 음주 후 외출 도중 낙상하여 머리에 큰 부상을 입었고 하지만 한의원이나 약방에 가는 등 계속해서 치료가 늦어지자 상황은 심각해졌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지만 이미 늦은 후 여서 더 이상의 치료는 불가능하였고, 병실에서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고 있었고, 오랜 투병끝에 병실에서 향년 45세로 사망한다.

방근석의 장남으로 출생하였으며, 본래 대지주였던(전주의 땅을 소유함) 집안이 일제강점기 토지조사사업으로 가지고 있던 토지가 전부 몰수 되어 집안이 몰락하는 상황이 일어났다.

일제강점기 정우면 성동정(주청됨)에서 출생. 일본령 조선 전주고등보통학교다니지만 공부의 흥미가 없어 자퇴했다.

15세에 당시 17세였던 이일순과 결혼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대략 9년 정도 공산당정권에 속해있었고, 해방이후 지리산에서 대한민국정권이 들어서면서 공산당으로 몰리고 국가보안법에 의해 징역을 약 9년 정도 살아야했다. 석방이후 사업을 시작하였다.

사후 시신은 화장하여 인천 가족공원 납골당에 안치되어있다.

인천에 있는 가족공원 내에 있는 추모의집이다.

안치는 추모의집 지하에 안치됨.

1959년 대법원에서 국적문제로 재판을 받은적있음
- 한국전쟁당시 거주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표기됨
현재 국적은 대한민국으로 변경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