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wikipedia.org

카메이 후미오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Wed Apr 01 1908
카메이 후미오
亀井文夫

1930년대의 모습

출생1908년 4월 1일
후쿠시마현 소마군 하라정[1]
사망1987년 2월 27일(78세)
국적일본
직업영화감독

카메이 후미오(일본어: 亀井 文夫, 1908년 4월 1일 ~ 1987년 2월 27일)는 일본영화감독이다.

1928년 후쿠시마현 하라정(지금의 미나미소마시)에서 태어났다.[2] 유년기에 센다이시 몬젠마치(일본어판)로 이사하였으며 와세다중학교(早稲田中学校)를 졸업했다. 1928년 문화학원(文化学院 분카가쿠인[*]) 대학부를 중퇴하고 소련으로 유학하여 레닌그라드 영화전문학교(LIKI)에서 청강하였으나 병으로 귀국했다.[3]

1933년 도호의 전신인 사진화학연구소(冩眞化学研究所, Photo Chemical Laboratory)에서 "문화영화"라 불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상하이》(上海, 1938), 《전사들》(戦ふ兵隊, 1939) 등을 제작했다. 1941년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를 제작한 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었으며, 1년여간 구금된 후 기소유예되었으나 영화감독 자격을 박탈당했다.[4]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복귀하여 이와사키 아키라(岩崎 昶)가 제작한 영화 《일본의 비극》(日本の悲劇, 1946)의 감독을 맡았으나 연합군 최고사령부 민간검열국(Civil Censorship Detachment)의 검열을 받았으며 쇼와 천황의 전쟁 책임을 묻는 내용이 문제가 되어 이내 상영금지되었다.[5] 또한 야마모토 사츠오와 공동으로 《전쟁과 평화》(戦争と平和, 1947)의 감독을 맡았다. 그 이후로 주일 미군 기지, 핵무기, 부라쿠민 차별, 환경파괴 등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다.

  • 《상하이》 (上海, 1937)
  • 《베이징》 (北京, 1938)
  • 《전사들》 (戦ふ兵隊, 1939)
  • 《고바야시 잇사》 (小林一茶, 1941)
  • 《일본의 비극》 (日本の悲劇, 1946)
  • 《전쟁과 평화》 (戦争と平和, 1947)
  • 《살아있어 다행이다》 (生きていてよかった, 1956)
  • 《유혈의 기록: 스나가와》 (流血の記録――砂川, 1957)
  • 《인간 모두 형제》 (人間みな兄弟, 1960)